독자 여러분께.
2026년 4월, 산업통상자원부가 480억 원을 들여 제조 명장들의 ‘암묵지’를 인공지능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30년 경력의 용접공이 불꽃 색깔과 연기 냄새로 온도를 가늠하는 법, 반도체 공정의 숙련 기사가 기계 소리만으로 이상을 감지하는 법 — 언어로는 끝내 다 전달되지 않는 그 앎을, 데이터로 만들어 AI 모델에 담겠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 사업을 “보존”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령화와 은퇴 가속화로 명장들의 암묵지가 단절될 위기에 처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노동계는 같은 사업을 “탈취”라고 불렀습니다. 숙련공이 평생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AI에게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사실을 두고 두 개의 다른 이름이 맞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간격 사이에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암묵지라는 개념은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에게서 왔습니다. 그는 1966년 한 문장으로 이것을 정의했습니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 수 있다(We can know more than we can tell).”
그가 말한 앎은 교과서에 담기는 종류가 아닙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글로 완벽하게 서술할 수 없듯, 오랜 시간 몸과 감각으로 체득된 지식은 언어의 그물에 온전히 담기지 않습니다. 명의의 촉진, 장인의 손끝, 숙련된 판단자의 직관 — 이것들은 가르칠 수 있지만 다 설명될 수 없고, 전달될 수 있지만 다 명시될 수 없습니다. 폴라니는 그 잉여를 암묵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적인 이유는, 바로 말로 다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앎을 가장 먼저 탐낸 것은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100년 전, 프레데릭 테일러(Frederick Taylor)가 스톱워치를 들고 공장 바닥에 섰습니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손을 움직이는지, 얼마나 걷는지, 어느 순서로 도구를 집는지를 측정하고 기록했습니다. 시간·동작 연구(time-motion study)라는 이름의 이 작업은, 노동자의 몸에 숙련된 지식을 분해해 관리자가 소유하는 절차로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암묵지를 명시지로 변환하고, 그것을 자본의 자산으로 만든 것입니다.
테일러리즘이 공장에서 한 것을, AI는 지금 더 넓은 영역에서 하려 합니다.
테일러는 육체노동의 암묵지를 추출했습니다. 손기술, 동선, 작업 리듬. 현재의 AI는 지적·전문적 노동의 암묵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의사의 진단 직관, 변호사의 사건 감각, 반도체 기사의 귀, 용접 명장의 눈, 더 깊은 곳, 더 개인적인 곳, 더 말하기 어려운 곳까지 말입니다.
산업부의 480억 원 사업은 그 과정의 한 장면입니다. 테일러가 스톱워치로 했던 것을, 이제 센서와 데이터와 모델로 합니다. 규모가 다르고 속도가 다르지만, 구조는 같습니다. 암묵지를 추출하고, 조직화하고, 시스템에 담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을까요.
폴라니의 암묵지 개념에는 조용한 저항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간의 앎은 언어와 규칙으로 다 환원되지는 않는다는 것 — 그래서 인간이 기계로 완전히 대체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인간만의 영역을 지키는 방어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어선이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AI는 사람의 언어보다는 통계를 씁니다. 명장이 직접 설명하지 못하는 판단의 패턴을, 수천 번의 사례에서 추출한 상관관계로 포착해낼 것입니다. 폴라니가 “말할 수 없다”고 한 것이, 어쩌면 “언어로는 말할 수 없지만 데이터로는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둘은 같지 않지만, 문제는 그 경계가 어디인지 우리가 아직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물음이 생깁니다.
암묵지가 AI로 옮겨질 때, 우리는 무엇을 잃는 걸까요? “보존”이라는 말은 이 질문을 닫아버립니다. 잃는 것이 없다는 듯 말이죠. 하지만 명장이 30년간 몸으로 쌓아온 것과, 그 데이터를 학습한 모델이 내놓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결과는 비슷할 수 있어도,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과 맥락 — 은 데이터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끝내 다 말하지 못합니다. 암묵지를 명시화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빠져나가는지를, 암묵지 자신이 우리에게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노동·토지·화폐를 허구적 상품(fictitious commodities)이라고 불렀습니다. 원래 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 시장이 그것을 상품처럼 다루고 있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3 그는 인간의 살아있는 활동이 거래 가능한 단위로 변환될 때,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왜곡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마이클 폴라니와 칼 폴라니는 형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 두 형제의 통찰이 하나의 사건에서 만나는 장면인지도 모릅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앎이, 칼 폴라니가 말한 허구적 상품으로서 - 팔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음에도 - 시장에 나오려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것을 보존이라고 합니다. 노동계는 탈취라고 합니다. 어쩌면 둘 다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물어야 할 것은 — 무엇이 보존되고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우리가 과연 알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 매체의 이름이 폴라니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칼 폴라니가 시장이 사회를 집어삼킬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물었듯, 마이클 폴라니가 말로 다 못 하는 앎의 가치를 지켰듯 — 폴라니는 기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를 포함해 들여다보려 합니다. AI와 사회 사이에서, 그 자리에서 편지를 씁니다.
폴라니는 기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가를 기록하는 독립 매체입니다. 이것은 한글판 첫 번째 편지입니다.
1 배문숙, 「산업부, 제조 암묵지 기반 AI모델 개발 본격 추진…올해 480억원 투입」, 헤럴드경제, 2026년 4월 28일.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726837
2 Michael Polanyi, The Tacit Dimension (New York: Doubleday, 1966), 4. 정확한 원문은 "We can know more than we can tell"이다. 국내에는 『무언의 차원』으로 번역되어 있다.
3 Karl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The Political and Economic Origins of Our Time (New York: Farrar & Rinehart, 1944). 국내에는 『거대한 전환』(길, 2009)으로 번역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