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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헤라클레이토스 · 기원전 5세기경

독자 여러분께.

지난 편지에서 저는 시험장의 스마트 안경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일반 안경보다 두꺼운 안경다리를 수상히 여긴 감독관의 눈썰미, 무효 처리된 시험, 그리고 안경다리가 아직 두꺼운 지금 먼저 꺼내야 할 질문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편지를 쓰면서, 저는 한 가지 장면을 옆으로 밀어두고 있었습니다. 시험장은 안경을 금지하거나 제출하게 하고 들여보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문이 있고, 감독관이 있고, 또 반입 금지 목록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 문 바깥은 어떨까요. 같은 안경이 시험장이 아니라 지하철에, 카페에, 탈의실 앞 복도에 있을 때 말입니다.

오늘은 그 문 바깥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먼저 지금 유명 쇼핑몰에서 팔리고 있는 물건 하나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스마트 안경에는 촬영 중임을 주변에 알리는 작은 표시등이 달려 있습니다. 몰래 촬영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죠. 한 제조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표시등을 가리면 아예 촬영이 되지 않도록 센서까지 붙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곧 시장에는 표시등은 가리면서도 여전히 촬영은 가능하도록 안경에 씌울 수 있는 커버가 나왔습니다.1 안전장치가 나오면 곧 그것을 무력화하는 상품이 나오고 누구나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쇼핑몰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단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만이 아닙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목격담이기도 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카메라와 AI를 결합한 스마트 안경이 공식 출시된 건 지난 5월이었습니다.2 겉보기에는 평범한 뿔테 안경과 구분이 어려운 이 물건이 먼저 출시된 나라들에서는 이미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런던에서는 한 여성이 쇼핑 도중 스마트 안경을 쓴 남성에게 자신도 모르게 촬영을 당했습니다. 남성은 영상을 지워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며 그것을 ‘유료 서비스’라고 불렀고, 영상은 소셜미디어에 올라 수만 회 이상 재생되었습니다.3미국에서는 일부 이용자들이 안경을 쓴 채 여성에게 접근해, 자연스러운 대화처럼 보이는 장면을 동의 없이 촬영하고 게시하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이때도 상대는 자신의 모습이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4

이마저도 아직 안경이 ‘보기만’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2024년 미국에서 대학생 두 명이 시중에서 파는 스마트 안경에 공개된 얼굴 검색 엔진과 AI 언어모델을 연결한 실험 하나를 공개했는데요, 길에서 처음 마주친 사람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면, 1분 안에 그 사람의 이름, 직업, 집 주소, 가족의 이름까지 화면에 떠올랐습니다. 두 학생은 경고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며 이 도구를 공개하진 않았습니다만, 그건 여전히 선의를 가진 두 사람의 선택일 뿐입니다.5

이런 소식 뒤에 항상 따라오는 물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래서, 법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저는 우리나라의 기록을 좀 꺼내고 싶습니다. 사실 안경 모양 카메라가 아주 새로운 물건인 건 아닙니다. 안경, 볼펜, 시계, 라이터 모양을 한 이른바 위장형 카메라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불법 촬영 범죄에 쓰여 왔습니다. 2015년, 당시 경찰청장은 이런 카메라의 생산·판매·소지를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6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몇 차례나 발의되었습니다. 2015년에도, 2017년에도, 2021년에도, 2022년에도요. 단 한 건도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반대 속에 번번이 폐기되거나 잠들었고, 위장형 카메라의 소지와 취급에 대한 규제는 지금도 사실상 없습니다.6

그리고 이 기록에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2022년 마지막으로 발의된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 내용입니다. 이 보고서는 법안이 규제하려는 위장형 카메라와 스마트 안경 같은 새로운 웨어러블 기기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습니다.6 다시 말하면, 국회가 스마트 안경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서 그 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건 제가 생각하기에 신기한 역전입니다. 스마트 안경이 단순히 있는 법을 기술적으로 앞지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법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이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규제해야 할 대상은 종을 바꿔버렸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상륙한 건 뒷골목에서 팔리던 위장 카메라가 아니라, 세계적 기업이 만들고 유명 브랜드의 이름을 달고 백화점 매장에 진열되는 정식 소비재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지난해에만 수백만 대가 팔렸죠.7 법은 안경다리에 렌즈를 숨긴 조악한 카메라조차 따라잡지 못했는데, 따라잡아야 할 거리는 그 사이에 훨씬 멀어진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사안이 이만큼 중대하니 이번에는 법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그럴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여러 움직임이 있기도 합니다. 미국의 한 도시는 법정에 스마트 안경 반입을 금지했고, 미 공군은 복장 규정에 착용 금지를 명시했습니다.8 우리나라에서도 지난달 말 공고된 수능 시행 계획에 스마트 안경이 반입 금지 물품으로 명시되었습니다.9 지난 편지에서 저는 우리나라도 곧 이런 방식을 택하리라 추측했는데, 그 추측은 편지가 독자 여러분께 닿기도 전에 사실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설령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남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법이 표시등을 의무화하면, 표시등을 가리는 커버가 나옵니다 — 심지어 이미 나왔죠. 법이 특정 기기의 반입을 금지하면, 기기는 더 평범한 안경의 모습으로 얇아집니다. 법이 안면인식 기능을 금지하면, 그 기능은 기기 바깥에서, 시중에 이미 있는 서비스 몇 개를 이어 붙이는 것으로 쉽게 재현됩니다 — 위의 두 대학생이 보여준 것처럼요. 막는 쪽이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뚫는 쪽은 두 걸음 앞서 있고, 그 한 걸음조차도 우리 국회는 십 년이 지나도록 떼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법이 언젠가 — 어떻게든 — 따라잡는다고 했을 때, 법이 마주하는 세상은 출발할 때의 그 세상일까요?

저는 이 질문이 이번 사안의 진짜 무게가 놓인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몰래 촬영당한 사람의 피해는 분명하고, 참혹하고, 처벌과 배상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일들이 쌓이는 동안 조용히 진행되는 다른 종류의 손실이 있습니다. 아직 촬영당하지 않은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손실 말입니다.

카메라라면 이미 모두의 주머니에 있지 않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다만 스마트폰으로 누군가를 찍으려면 기기를 꺼내 들어 올리고 겨누어야 합니다. 그 동작이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견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경은 그 동작을 없앱니다. 시선이 곧 카메라의 방향이고, 착용은 아무런 행위도 아닙니다. 찍는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행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바뀌는 것 — 달라지는 건 바로 이것입니다.

그 변화가 무엇을 건드리는지 보려면, 우리가 매일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는 일들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입니다. 낯선 사람과 무심코 눈을 마주치는 일.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안경을 의식하지 않는 일. 탈의실과 화장실과 술자리에서, 마주 앉은 상대가 나를 기록하고 있지 않다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일. 우리는 이것들을 신뢰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이름이 필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 안경이 지금 나를 찍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이 되는 순간, 이 이름 없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집니다. 지식에만 암묵적 영역이 있는 건 아닐 것입니다. 신뢰도 그럴 것입니다.

사생활 침해는 피해자가 있고, 사건이 있고,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사후의 구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뢰의 침식에는 특정한 피해자가 없습니다. 모두가 조금씩 — 어쩌면 많이 — 잃고, 누구도 고소하기 어렵고, 어떤 판결도 그것을 돌려주지 못합니다. 법이 마침내 기술을 따라잡아 빈틈 없이 작동하는 날이 온다 해도, 그날 법이 지켜주는 것은 그 시점 이후의 안전이지, 그 사이에 우리가 서로를 대하던 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는 질문을 열어두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닫아두고자 합니다.

이 사안을 다루는 순서에 대한 것인데요, 지금의 논의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 사건이 터지면 분노하고, 반입 금지 품목을 늘리고, 법안이 발의되고, 잠들고, 다음 사건을 기다립니다. 이 순서의 문제는 느리다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이 순서 안에 애초에 신뢰라는 항목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금껏 우리가 관심가진 것은 적발 건수와 처벌 수위이지, 우리가 서로의 눈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 것인지가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 그 세부 설계는 법학자와 기술 전문가와 입법자가 함께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 논의를 지금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출발점이 어디여야 하는지는 저라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잃고 나서는 입법으로도, 배상으로도 돌려받을 수 없는 것이 지금 걸려 있다는 사실부터라고 말입니다.

지난 편지는 안경다리가 아직 두꺼울 때 질문을 꺼내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오늘의 편지도 거의 같은 자리에서 끝납니다. 다만 이번에 걸려 있는 것은 시험장 안의 공정함이 아니라, 시험장 밖에서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 전부입니다.

강물은 흐르고 있습니다. 법을 기다려주지 않고, 우리를 기다려주지도 않습니다.

폴라니는 기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가를 기록하는 독립 매체입니다. 오늘 한글로 적은 네 번째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1  한국일보, 「촬영 불빛 가리는 커버까지... 대중화 기로 선 스마트 안경의 난제」, 2026년 6월 12일.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1215240005879

2  Meta 공식 뉴스룸, 「Ray-Ban Meta·Oakley Meta 5월 25일 한국 공식 출시」, 2026년 5월 19일. https://about.fb.com/ko/news/2026/05/meta-wearables-launch-in-korea/. 권장 소비자 가격은 69만 원부터이며 백화점·면세점·안경원에서 판매된다.

3  BBC 보도를 인용한 ZDNet Korea, 「스마트 안경 몰카 무섭네…피해자에 "삭제하려면 돈 내"」, 2026년 5월 9일. https://zdnet.co.kr/view/?no=20260508165743

4  뉴욕포스트 보도를 인용한 뉴시스, 「메타 스마트 안경, '몰카' 도구로?…」, 2026년 4월 17일.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416_0003594321

5  Forbes, "Two Harvard Students Use Meta Ray-Bans and AI To Get Personal Information," October 4, 2024. https://www.forbes.com/sites/lindseychoo/2024/10/04/meta-ray-bans-ai-privacy-surveillance/. 프로젝트명은 I-XRAY. 하버드대 학생 AnhPhu Nguyen과 Caine Ardayfio가 시판 스마트 안경, 얼굴 역검색 엔진(PimEyes), 대규모 언어모델을 결합해 시연했으며, 도구 자체는 공개하지 않았다.

6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장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 검토보고」(의안번호 2117655, 윤영석의원 대표발의), 2022년 11월. 검토보고서는 위장형카메라의 정의 조항을 검토하며 "드론, 스마트 안경과 스포츠 등 개인 활동 촬영을 위한 일반 웨어러블 카메라 등 새로운 융복합 기기와 제정안의 규제 대상인 위장형카메라와의 구분이 모호한 점 등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임"이라고 명시했다(9쪽, 15쪽). 이 법안은 2022년 11월 10일 제400회국회 정기회 제10차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정되어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되었으며, 같은 소위에 유사한 취지의 진선미 의원안(2109152)·윤영찬 의원안(2112649)도 함께 계류되어 병합 심사가 권고되었다. 21대 국회 임기(2024년 5월 29일 만료) 내 통과 기록이 없어 임기만료 폐기된 것으로 파악된다. 2015년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의 규제 법안 마련 발표 이후 반복된 발의·폐기의 배경은 세계일보, 「위장 카메라 불법 촬영 판치는데… 규제법은 국회서 '낮잠'」, 2022년 10월 20일 참조. https://www.segye.com/newsView/20221020520446. "21대 국회까지 유사한 내용의 법률이 총 4건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됐다"는 종합은 네이트뉴스, 2024년 4월 3일. https://news.nate.com/view/20240403n34402

7  더퍼블릭, 「메타 스마트 안경, 사생활 침해 몰카 논란…」, 2026년 4월 16일. https://www.thepublic.kr/news/articleView.html?idxno=301396. 해당 제품은 출시 이듬해 한 해에만 700만 대 이상 판매되었다.

8  한국일보, 위의 기사(주 1). 필라델피아시는 2026년 3월 말부터 모든 법정에 스마트 안경 착용을 금지했고, 미 공군은 같은 해 2월 복장 규정 개정으로 군복 착용 시 AI 안경 착용을 금지했다.

9  한국대학신문, 「"일반 안경처럼 생겼는데…" 평가원, 'AI 안경' 등장에 수능 시험 골머리」, 2026년 7월.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94270.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26년 6월 30일 공고한 2027학년도 수능 시행 세부 계획에서 스마트안경을 포함한 통신 기능 물품의 시험장 반입을 금지했다. 서울시교육청도 이에 앞서 기말고사 관련 공문(2026년 6월 11일)에서 같은 취지의 지침을 각 학교에 전달했다. 미주중앙일보, 「"안경다리 자꾸 만지면 의심하세요"…기말고사 앞두고 'AI 안경' 주의보」, 2026년 6월 12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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